음악 리뷰/남자가수

SG워너비의 얼굴 마담 이석훈에 대해 파헤쳐보자.

NamuA 2015. 9. 24.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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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당시의 이석훈. 벌써 7년 전 사진이다.

이 때부터 훈내가 났다.

(출처 : 싸이월드)


본의든 타의든 자의든 아니든, 기회는 주어지는 것의 것이라 불려진다.

그 기회를 잡은 사람은 한없이 행복에 빠지고 울고 불고 죽을 힘을 다 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어나간다.


이석훈이 SG워너비로 첫 데뷔했을 당시, 내가 생각했던 단어다.


이석훈이 데뷔하던 이 때의 나는 고3이였고,

고3의 신분을 망각하고, SG워너비 전국투어 콘서트를 다닐 정도로 SG워너비에 미쳐있었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내가 하도 부르니까 라라라를 외울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SG워너비를 동경했다. 또한 이석훈은 내가 최고로 동경하던 채동하의 탈퇴로 들어온 새 멤버였다. 당시의 학력은 동아방송대학 영상음악과를 졸업하고, 청운대학교 방송음악과로 편입하고 졸업하여,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1984년 2월 21일. 인천광역시에서 자랐지만, 원래는 경상북도 포항시 출신이다. 경상도 사나이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뚝뚝함. 어쩔 수 없이 경상도의 피가 줄줄 흐른다. 물론, 쭈욱 살은 건 아니고, 6살 때 인천광역시로 이사했다고 한다. 약간 생글생글한 모습을 가진 것이 친화력이 더 늘어난 듯. (얼굴도 그렇고) 같은 멤버인 김용준과 나이가 같다. 이석훈이 빠른 년생인 건, 신경 쓰지 말자. 한 살 더 먹는 게 뭐가 좋다고.


얼마 전까지 복면가왕에서 양민학살을 하던 클레오파트라 김연우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김연우가 이석훈을 자주 언급하기도 했다. 나중에 팬들이 이 사실을 알고서, 김연우랑 공통점을 찾기도 했는데, 기본 발성이 탄탄한 것과 안경 빨(안경 쓰면 미남 되는)이 있는 것까지 똑같다. 이쯤 되면 평행이론


사실 오디션을 볼 당시에만 해도, 이석훈은 한 보컬학원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다. 가수 초신성의 보컬 트레이닝도 이석훈이 해놓은 거다. 하지만, 중국에서만 활동하느라, 어느샌가부터 한국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는 게 함정. 연인 OST에도 참여하는 등, (누구 주장으론 내 이름은 김삼순 OST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참여한 적 없다.) 가수 꿈을 키우고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보컬학원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던 중, SG워너비 비공개 오디션 공고가 났었다고. 그럼에도 오디션을 주저하다가, 원장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때 천여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기본적인 발성이 탄탄하다 보니까, 합격할 수 밖에 없었던 듯.


SG워너비 오디션에 합격해서, 새 멤버로 들어온 이후, 5집 타이틀곡이였던 <라라라>로 활동하던 데뷔 초기에는 안티가 훨씬 많았다. 사실, 채동하가 이루어놓은 것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2집 3집 4집 심지어 일본콘서트와 SG워너비의 파워형 캐릭터가 김진호, 채동하 둘 씩이나 있었다. 김진호는 R&B 계열로 강했고, 채동하는 데뷔 시절부터 발라드와 락을 넘나들었다. 그런데, 그 장르를 넘나들던 채동하가 소속사와의 이견 충돌로 인해, 탈퇴했고, 대신 들어온 사람이 그냥 발라드형 가수였다. 팬들이 처음 이석훈을 봤을 때, 느꼈던 건 "응? 성시경?"이였다. 한 마디로 채동하와 이미지가 전혀 달랐다는 것.


심지어, SG워너비 안티들이 "내가 더 잘 부르겠다. 내가 들어갈게 이석훈 빼라."와 같은 비난도 서슴치 않았다. 팬들 또한, 그의 가창력에 의문을 던졌다. 이렇다 보니, 


또한 이석훈이 탈곡기마냥 탈탈 털렸던 부분은 다름 아닌, 2집 더블 타이틀곡이였던 <살다가>, 3집 타이틀곡이였던 <내 사람>을 소화하지 못 한다는 점 때문이였다. 이 게 사실 의문을 제기했던 게 팬들이 먼저였다. SG워너비 다음 공식팬카페인 사랑방이였는 지, SG워너비 네이버 공식팬카페였는 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영상에서 올라온 걸 보면, 이석훈이 <내 사람>을 부르다가 채동하가 라이브용으로 불렀던 파트인 "다시 태어나서 사랑한대도" 이 부분을 씹어버린 것. 팬들에게는 단번에 애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사실, 이 땐 말 못 할 일화가 있었는데, 알려진 바로는 5집 발매기간을 얼마 남기지 않고, 이석훈이 들어왔고, 이 발매기간을 맞추기 위해, 앨범에 있는 모든 곡들을 2주일도 안 되서 녹음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한화 이글스 김성근이 권혁이나 박정진 같은 불펜들을 혹사시킨 거나 마찬가지. 아무튼, 이 때 성대 결절에 걸려서, 시망 상태였다. 때문에 저런 상황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김동률을 꽤 많이 동경하는 것으로 보인다. 5집 전국투어 콘서트 때부터 김동률의 <아이처럼>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김동률과 목소리 닮은 꼴로 유명했다. 이 때 이석훈이 <아이처럼>의 첫 가사인 "사랑한다 말하고~"만 불렀다 하면 꺄아악 거리고 난리다. 참고로 롤모델은 김건모다.


참고로 SG워너비는 모두가 보컬 트레이너를 한 경험이 있다. 이석훈은 초신성 보컬트레이너였고, 故 채동하를 포함하여, SG워너비 멤버 모두가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 데뷔시킨 가수가 있다. 그 가수가 바로 '씨야'. 같은 소속사에 있는 더 씨야는 씨야가 해체하고 나온 그룹으로서, SG워너비하곤 아무 관계 없다.


6집 때부터 목소리가 나아지기 시작했고, 발라드와 매력적인 중저음 보이스로 인해, 많은 여성 팬들을 끌어 모았다. 이미 5집 발매 후, 일본 앨범도 두 개나 냈고, 조영수 [All Star] 앨범 성격으로 <웃으며 안녕>도 발매해서, 가창력도 입증받았고, 순위도 쏠쏠했었다. 꽤 방송을 오래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홍대 길거리 공연이나 인천터미널 쪽 먹자거리에서 노래 좀 부른단 사람들이 공연할 때 이 곡을 부른다. 꽤 어려운 곡이기 때문. 사실 이 거 잘 부르면 환호도 나왔다.


거기다가 SG워너비 일본 앨범에서는 주제부 멜로디의 절반을 가져가는 등, 지분이 꽤 높았다. 6집이 10위권도 들기 어려웠었다. 그 때쯤 냈던 텔레시네마 7번째 프로젝트인 「낙원」의 나온 노래가 <그리운 얼굴>이다. 그 뒤에 냈던 게, V.O.S랑 같이 냈던 <사랑합니다>. 아무튼 곡 복은 정말 타고났다.


그 때 쯤부터 본격적인 솔로 시동을 걸었다. 2010년 5월 24일에 발매했는데, 전곡 공개에 앞서서 먼저 공개된 <그대를 사랑하는 10가지 이유>는 본인이 직접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면서, 피아노도 치고 그랬다. 이 게 선공개곡이였는데, 뒤이어, 공개된 타이틀곡이였던 <정류장> 보다 순위가 높았다. 이 곡은 한 때 싸이월드 BGM 차트 1위도 찍고 그랬다. 정작, <정류장>은 폭망했다. 사실 이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발매 전날에 녹음했던 파일이 하드디스크 오류로 싹 다 날라가는 바람에, 원래 발매 날짜보다 미뤄져버렸던 것.


이후의 SG워너비 활동 성적은 대세가 바뀌어서 저조했다. 7집 발매하기 전에도 겨울 나무를 일주일 전쯤 선공개 했는데, 역시나 주제부 파트의 절반을 뚝 떼어가서 불렀다. 앨범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더 탄탄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7집은 혹평이란 혹평은 다 듣고 망했다. 아주 그냥 시원하게 망했다. [Rode For Hope] 프로젝트 앨범이였던 <달리기> 또한 순위에 들지 못 했다. 또한, 7집 Part.II의 경우는 아예 발매된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 이렇다 보니, 아예 연일 매진을 해버리는 콘서트형 가수로 바뀌게 된다.


「주먹이 운다」라고 XTM에서 매년 시즌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알 사람들은 알 거다. 이 때는 초기였다, 세번째 OST에서 오랜만에 이석훈은 <고백>이라는 곡으로 참여하게 된다. 매 앨범의 평이 좋듯, 이 앨범도 남자들의 애환을 담은 곡으로 호평이 자자했다.


또한 개인 소속사를 그 때쯤,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로 옮겼다. <연애의 시작>은 젤리피쉬로 옮기고 나서 처음 발매한 싱글이다. 두번째로 낸 솔로 앨범 「다른 안녕」은 수작으로 꼽힌다. 이석훈으로서,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되었다. 또한 <당신의 자리>라는 자작곡도 실렸다. 여기다가, 박효신이 제대하고 난 뒤, 젤리피쉬에서 낸 단체 크리스마스 앨범인 <크리스마스니까>의 경우는 아직도 겨울철만 되면, 음반 올킬을 할 정도. 역시나 여기서도 클라이맥스 고음까지 파트를 가져가는 위엄을 보여준다..


그즈음, 이석훈이 2013년 1월 22일에 군입대를 한다는 기사가 떴다. 이후에도 이석훈은 「보고 싶다」 OST 네번째 발매곡인 <사랑하면 안돼요>, 스페셜 앨범인 <친구 아닌 남자로>, 황성제 작곡가의 황성제 프로젝트 슈퍼히어로 앨범에서 2004년에 김연우가 발매한 <연인>을 리메이크 했다.


이석훈이 군입대를 한 이후, 연예병사가 되어, 국방방송 라디오에 이따금씩 출연하고 있었다. 입대 전에 녹음했던 앨범이 군복무 중이던 2013년에 공개 됐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괜찮았지>가 그 곡이였다. 이 때쯤 연예병사 사건이 터졌다. 그로 인해, 연예병사가 폐지됐고, 국방방송 라디오 진행하던 이석훈은 전방 부대로 배치되어, 군복무를 하고 전역했다.


그리고, 2년 3개월 만에 나온 앨범이 SG워너비 미니앨범인 [THE VOICE]다. 두 시간 만에 1위 찍더니, 지금도 상위권에서 놀고 있다. 24위를 차지하면서, 여전히 10위~20위권을 왔다 갔다 한다. 역시나, 2주 만 활동하고 방송활동 끝냈다. 10월부터 SG워너비 콘서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석훈이 대중에게 이석훈을 알리게 된 건 1999년부터 시작된 SBS 파워FM의 <텐텐클럽> 9대 DJ를 맡게 되었다. 시간도 밤이겠다. 심야의 세레나데 가끔씩 불러주면 팬들이 녹는다고 해서, 시청자가 꽤 많았다. 이석훈은 2011년 4월 4일부터 2012년 4월 29일까지 방송했다. 이석훈을 끝으로 텐텐클럽은 아예 폐지되었고, 그 시간대에는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가 신설되었으며, 현재는 케이윌이 진행을 맡고 있다.


2011년 MBC 「두근두근 사랑의 스튜디오」 출연 당시의 이석훈과 발레리나 최선아.

4년 뒤, 이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아마, 이들을 부러워했던 이들은 정말 많았을 거다.


2015년에는 발레리나 최선아 씨와 혼인신고를 하며, 유부남 대열에 합류했다. 결혼은 내년에 올린다고. 사실, 컴백 전부터 이석훈의 유뷰남 대열 합류는 화제였다. 발레리나 최선아 씨를 만난 게 4년 전이였던 2011 설특집 「두근두근 사랑의 스튜디오」라는 프로그램이였다. 연예인이 일반인과 만나는 일종의 「강호동의 천생연분」 같은 포맷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방송에서 끝나지 않고, 만남을 이어 왔다. 4년 연애 끝에 혼인신고를 한 것. 김용준이 "최선아 씨가 녹음실로 놀러왔는데, 5층짜리 과일도시락을 만들어왔다. 예쁘게 깎은 과일만 있었다."고 부러워 했을 정도.


사실 이석훈은 중고 신인에 가까웠을 지도 모른다. 연인 OST만 부른것만 해도. 1984년생에 데뷔는 2008년이다. 25살의 나이였다. 채동하 후임으로 들어온 멤버로서, 가창력 논란까지 돌며, 까일 거 다 까였지만, 그는 벌써 8년차 대형가수다. 참으로, 이석훈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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