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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스터' 그렉 매덕스

NamuA 2020. 2. 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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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가 쓸 내용은

 

마스터(Master), 교수(The Professor), 미친 개(Mad dog)라는 별명을 가진

시카고 컵스(Chicago Cubs), 애틀랜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의 영구결번 선수

전설적인 제구를 가진 No.31 그렉 매덕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세상 사는데 정해진 거라고는 세금과, 죽음과 매덕스의 15승 뿐이다.

먼저 프로필부터 보시죠.

 

본명: Gregory Alan Greg Maddux(그레고리 앨런 그렉 매덕스)

생년월일: 1966년 4월 14일

출신지: 텍사스 주 샌앤젤로

신체: 183cm, 77kg(투수로서는 꽤 스몰하지만 이 사람의 장점은 후술.)

포지션: 투수, 우투우타

프로입단: 드래프트 2라운드 (CHC, 시카고 컵스)

 

23시즌 744경기 5008.1이닝 355승 227패 ERA 3.16 3371K 353피홈런

K/9 6.06 BB/9 1.79 WHIP 1.14 FWAR 116.7

사이 영 상 4회, 올스타 8회, 골드 글러브 18회, TSN 올해의 투수상 4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황금기 시절, 사이영 3인방이 있었습니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그리고, 그렉 매덕스입니다.

톰 글래빈과 존 스몰츠는 나중에 기회 되면 설명해보겠습니다.

 

그렉 매덕스는 이 3인방 중에서도 에이스라 불릴 정도로 굉장한 실력을 가졌습니다.

 

좌완투수인 랜디 존슨과 함께 현대야구 최강의 선발투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수의 장점은 랜디 존슨처럼 제구 되는 구속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제구력입니다. 그 것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는 제구력이죠.

 

데뷔 시절의 매덕스는 그렇게 손에 꼽히지도, 뛰어난 투수도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의 장점은 끔찍할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과 뛰어난 두뇌였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애틀란타 프랜차이즈 선수들 중에서 가장 선구자였던 워렌 스판은 피칭은 타격의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렉 매덕스는 그런 워렌 스판의 말을 가장 잘 이행한 투수였습니다. 거기다가 소위 쌈닭이라 불리는 공격적인 투구를 지녔죠.

 

그래서 매덕스는 느린 구속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Command Pitcher(커맨드 피쳐), Power Pitcher(파워 피쳐)라는 말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렉 매덕스처럼 전설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페드로 마르티네즈, 랜디 존슨의 단점이라면, 페드로는 잦은 부상과 랜디 존슨은 컨트롤과 무브먼트의 부족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결국 다양한 변화구로 버텨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죠. 페드로는 서클 체인지업, 랜디 존슨은 슬라이더가 대표적이였습니다.

 

하지만, 매덕스는 구속이 느리고, 체격이 왜소하다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하기 힘들다였죠. 상기한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매덕스는 큰 체격이 아닙니다. 183cm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평균 신장인 191cm에 훨씬 못 미치고, 한국 프로야구 리그인 KBO 선수들의 평균 신장인 184cm에서도 1cm가 모자랐습니다.

 

그리고, 매덕스의 평균 구속은 고교 시절부터 줄곧 86~90마일이였습니다. 다시 말해, 140km/h대에 불과했다는 얘기죠. 스카우터들의 리포트에 따르면, 무브먼트가 굉장히 좋은 공을 던졌다 했습니다. 어찌 됐든 무브먼트가 좋았기 때문에 시카고 컵스가 2라운드에 지명하게 됩니다.

 

상기한 것 중에 빼먹은 게 하나 있는데, 매덕스의 손가락은 작은 편입니다. 어찌 보면 투수로서는 작은 키에, 느린 구속에다가 작은 손까지.. 불리한 조건을 가졌다 볼 수도 있겠죠.

 

여하튼 이런 단점을 지닌 매덕스는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시절 여느 유망주들처럼 93마일의 속구를 던졌었지만, 자신의 신체적 특성상 롱런하기가 어렵다 생각했었고, 구속 보다 공끝을 연마해 무브먼트를 더욱 좋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매덕스는 제구 만큼이나 무브먼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것은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였던 팀 린스컴이 100마일을 찍는 불같은 광속구를 지녔지만, 랜디 존슨이나 페드로와 달리 180cm에 불과했고, 이 구속 때문에 커리어가 불과 10년에 불과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되겠네요. 뭐 2016~2018년은 아시다시피.. 여기다가 린스컴은 웨이트를 안 하는 데다, 오버워크 때문에 본인의 선수생활을 망친 게 큽니다. 쉽게 말해, 자기 관리를 안 했습니다.

 

사실 매덕스는 브레이브스가 아닌 시카고 컵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84년 2라운더로 입단했고, 1986년까지 줄곧 마이너리그에 있었습니다. 저러한 무브먼트 개선을 위해, 담금질을 거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1986년에 콜업되어 메이저리그에 데뷔합니다. 성적은 6경기 31이닝 2승 5패 5.52의 평균자책점. 그리고, 1987년에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면서 매덕스는 풀시즌을 치르게 됩니다. 30경기 155.2이닝 6승14패 5.6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이 때까지만 해도 매덕스가 성공할 거란 생각은 아무도 안 했습니다. 당시 시카고 컵스의 상황은 매우 안습이였으니까요. 입단 동기이자, 데뷔 동기인 같은 팀에 있던 제이미 모이어가 12승 15패였으니까요. 참고로 둘 다 84년 드래프트 지명자이고,(매덕스는 2라운드, 모이어는 6라운드) 데뷔도 86년으로 같습니다.

 

하지만, 1988년 249이닝 18승 8패 3.1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컵스의 에이스로 자리잡습니다. 200이닝에서 보시다시피, 이 1988년은 2001년까지 이어지는 14년 연속 200이닝의 전설을 써내려간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매덕스와 똑같이 14년 연속 200이닝 던진 선수는 크리스티 매튜슨, 마크 벌리 뿐이고, 이 위에는 15년 연속의 돈 서튼, 17년 연속의 워렌 스판, 19년 연속의 사이 영 뿐입니다.

 

매덕스가 성공한 이유는 손가락의 악력이였습니다. 단지 그 거 하나만은 아니였지만, 느린 구속과 작은 키에 작은 손을 가진 이가 23년 동안, 5008.1이닝 3371 탈삼진이라는 기록을 보여줬으니 충분히 파워 피쳐의 범주에 들어가는 셈입니다. 약물 복용자인 베리 본즈가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고 들어오는데 그가 파워 피처가 아니면 누가 파워 피처인가?"고 말했으니까요. 그 정도로 매덕스는 빠른 승부를 즐기는 타입이였습니다. 매덕스가 공을 적게 던졌던 이유도 손가락 악력이 다 떨어지기 전에 마운드를 내려가려고 했던 것이였죠.

 

2019년에 부활한 류현진이 9이닝 93구로 완봉승을 따냈을 때, MLB.com에서 매덕스했다는 기사가 떴었습니다. 그만큼 매덕스가 최소한의 공을 던지는 경제적인 피처였다는 것을 보여준 거였죠.

 

랜디 존슨이 큰 키와 긴 팔, 샌디 코팩스가 큰 손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롱런할 수 있었다면, 매덕스는 손가락의 힘으로 스테로이드 시대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이죠. 그 건 매덕스 만이 할 수 있는 것이였습니다. 남들이 안 쓰는 손가락까지 써가면서 공을 던졌으니까요. 그렇게 던지는 투심 패스트볼은 MLB 역사상 손 꼽히는 마구였습니다.

 

그렇다고 주자 견제에 신경 쓰지도 않았습니다. 위기 상황에 몰렸다 할지라도, 남들은 속구 던졌겠지만, 매덕스는 그 와중에도 무브먼트 쩌는 투심 패스트볼이나, 서클 체인지업을 던져 타자들을 요리하곤 했습니다. 페드로에게 밀려서 그렇지, 서클 체인지업도 마구 수준이였죠.

 

흔히 그렉 매덕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매덕스의 구속만 보고 제구 되는 140km/h대 공만 던지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매덕스는 구위가 떨어지는 투수도 아니고, 그저 구속만 느렸을 뿐입니다. 오히려 구위가 떨어졌지만, 수싸움과 제구력으로 커버한 투수는 거울에 비친 매덕스라는 별명을 가졌던 톰 글래빈이였습니다. 그리고, 매덕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FA로 들어온 투수였습니다. 나중에 알려지지만, 컵스는 이 때 매덕스를 못 잡은 게 최악의 실패였죠. 이미 1988 시즌이 끝나고 제이미 모이어도 트레이드로 텍사스로 보내버렸던 상황이였죠. 어쨌든 매덕스는 상당한 거액이였거니와, 사이 영 상 4연패는 92년을 제외하곤 모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달성했습니다.

 

또한, 투수리드 자체를 안 믿고 던지는 투수로 유명했습니다. 브레이브스 시절 포수 하비 로페즈의 사인을 무시하고 던지는 걸로 유명했는데, "니가 하는 그 X같은 리드 때문에 타자 타이밍을 맞춰줄 생각 따위는 없어."라고, 하비에게 욕을 했다는 일화도 있는 모양입니다... 매덕스는 다음 공을 뭘로 던질지 알려주는 습관이 있었는데 하비 로페즈는 잘 기억 못 해서, 약지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전담 포수는 잘 기억해주는 에디 페레즈가 되었죠.

 

여하튼 브레이브스 이후에는 시카고 컵스에서 뛰다가 LA 다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거쳐 다시 온 LA 다저스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에 97.2%의 득표율로 입성하게 됩니다. 97.2%가 나온 이유는 약물 선수들 때문입니다. 누적 FWAR 1위이지만, 약물 혐의로 못 들어가는 로저 클레멘스를 비롯해 베리 본즈, 새미 소사 같은 약물 혐의자들이 대거 튀어나와서 백지표 던진 기자들이 생긴 거죠. 이래서 크레이그 비지오는 첫 턴에 못 들어간 것도 모자라서, 세번 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중 매덕스에게 백지표 던진 사람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전담기자인 켄 거닉(이 사람은 류현진 안티로도 유명하죠.)이였습니다. 스테로이드 시대에 뛰었다는 이유로 잭 모리스에게 표를 주고 맙니다. 하지만, 잭 모리스도 스테로이드 시대를 뛰었던 선수입니다. 켄 커닉은 결국, 모든 야구팬과 평론가, 기자들에게도 죽도록 욕을 먹었었고, 켄 로젠탈 기자에게도 "병신"이라는 욕을 얻어먹었죠.

 

어쨌든 그렉 매덕스는 그렇게 전설로 남게 되어 지금까지 야구팬에게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들이 있는 네바다 대학교 야구팀에서 투수코치를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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